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다
지구 최후의 날로부터 100년 후, 모든 것이 메마른 2157년의 어느 날, 태양빛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폐허가 된 도시의 가장자리에서 한 노인이 손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여진아, 내가 어릴 적에 할머니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이 있단다. 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다는 말이지. 노인은 갈라진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할아버지, 그게 무슨 뜻이에요? 우물은 알겠는데 숭늉이 뭐죠? 여진이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갈증으로 인해 거칠었지만, 열세 살 소녀의 호기심은 여전히 생생했다.
숭늉은 옛날에 밥을 지은 후 솥에 물을 부어 만든 구수한 음료였어.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은 그런 것들을 마셨지. 그건 밥을 지은 후에야 생기는 거란다. 우물은 물을 길어 올리는 곳이고.
그럼 우물에서는 숭늉을 찾을 수 없겠네요? 여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지, 그래서 이 속담이 있는 거야. 있지도 않은 것을 엉뚱한 곳에서 찾는 어리석음을 비꼬는 말이지. 노인의 눈에 잠시 슬픔이 스쳤다. 옛날에는 물도 풍부했고, 음식도 넘쳐났는데... 이제는 한 방울의 물이 생명보다 귀하구나.
바로 그 순간, 저 멀리서 푸른빛이 번쩍였다. 노인과 소녀는 동시에 그곳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저게 뭐죠? 여진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모르겠구나. 가서 살펴볼까? 노인이 천천히 일어섰다.
두 사람이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그것은 반짝이는 금속 구조물이었다. 원형의 작은 장치가 땅에 박혀 있었는데, 중앙에서는 푸른빛이 맥동하고 있었다.
이게 뭐지? 노인이 조심스럽게 다가가려는 순간, 장치가 갑자기 빛을 발하며 확장되었다. 순식간에 그들 앞에는 물이 담긴 웅덩이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물이 아니었다. 마치 액체 유리처럼 맑고 투명했으며, 그 안에는 별들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이... 이건 우물인가? 노인이 놀라서 말했다.
할아버지, 제 생각에는 우물 같아요. 하지만 어떻게... 여진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 물속에서 빛이 더욱 강렬해지더니, 한 형체가 서서히 나타났다. 그것은 투명한 물방울 모양의 존재였고, 내부에는 별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지구의 사람들. 저는 아쿠아스피어 7의 물 관리자 아쿠아입니다. 물방울 형체가 맑고 울림이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노인과 여진은 서로를 바라보며 동시에 물었다. 아쿠아스피어? 물 관리자?
네, 우주의 물 자원을 관리하는 행성입니다. 저희는 오랫동안 지구를 관찰해왔어요. 여러분의 물이 고갈되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쿠아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그래서 여기에 온 건가요? 우리를 도우러? 여진이 희망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문화 속에서 우리는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어요. '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다'라는 속담이요. 아쿠아가, 마치 웃는 듯한 파문을 일으키며 말했다.
우리 속담을 어떻게 알지? 노인이 놀라서 물었다.
우리는 언어와 문화도 연구했습니다. 이 속담이 물과 음식의 근본적인 관계, 그리고 지혜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여러분이 잃어버린 지혜를 되찾을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아쿠아는 물방울 몸체 안에서 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웅덩이에서 작은 물줄기가 솟아올라 공중에서 구 모양을 이루었다.
이것은 단순한 물이 아닙니다. 이것은 '코스믹 숭늉'이에요. 우주의 에너지가 담긴 물입니다. 한 방울만 마셔도 여러분의 DNA가 활성화되어 물을 정화하고 생성하는 능력을 갖게 될 거예요.
정말인가요? 여진의 눈이 커졌다. 우리가 물을 만들 수 있게 된다고요?
네, 하지만 모든 능력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아쿠아가 진지하게 말했다. 이 능력은 여러분이 다시 물을 낭비하는 삶으로 돌아가라고 주는 것이 아니에요. 물의 소중함을 알고, 모든 생명과 공유하기 위한 것입니다.
노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우리 속담 '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다'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말이었지만, 이제는 정말로 우물에서 숭늉을 찾게 되는군요. 역설적이네요.
아쿠아가 기쁜 듯 빛을 발했다. 맞아요! 때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가능해지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조상들이 가진 지혜가 우주의 진리와 맞닿아 있었던 거죠.
그럼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여진이 물었다.
이 코스믹 숭늉을 나누어 마시고, 물의 관리자가 되어주세요.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물의 소중함과 지혜를 가르쳐주세요. 아쿠아가 말했다.
노인과 여진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두려움과 희망이 동시에 비쳤다.
할아버지, 해볼까요? 여진이 물었다.
노인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을까? 이건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야.
그들은 조심스럽게 물방울을 손에 받았다. 물방울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고,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그들의 손바닥에서 반짝였다.
함께 마시자, 여진아. 노인이 말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두 사람이 동시에 물방울을 마셨을 때, 그들의 몸은 순간적으로 푸른빛으로 빛났다. 그들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우주의 지혜와 물의 비밀이 스며들었다.
이제 여러분은 물의 관리자입니다. 아쿠아가 말했다. 지구의 회복이 시작될 거예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진정한 숭늉은 지식과 지혜가 결합될 때 생기는 것입니다. 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여러분의 마음과 행동이 함께해야 합니다.
노인과 여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그들이 백 년 동안 흘릴 수 없었던 가장 순수한 눈물이었다.
고맙습니다, 아쿠아. 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이 선물을 소중히 여기고, 물의 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아쿠아는 마지막으로 빛을 발하며 말했다. 여러분의 속담처럼, 때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곳에서 해답을 찾게 됩니다. 앞으로의 여정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아쿠아는 빛 속으로 사라졌지만, 우물은 그 자리에 남았다. 노인과 여진은 이제 새로운 사명을 가진 물의 관리자가 되어, 메마른 지구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을 준비를 시작했다.
'세상 너머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런 일은 하나님도 어쩌지 못하지 (33) | 2025.04.24 |
---|---|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 지식의 차원 (26) | 2025.04.22 |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시간의 문 (22) | 2025.04.19 |
꿩 대신 닭, 우주의 대체품 (23) | 2025.04.19 |
무명천지지시, 유명만물지모 (28) | 2025.04.17 |